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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여성단체에 맞장뜰 올바른 여성단체는 없나?

 

그릇된 여성단체에 맞장뜰 올바른 여성단체는 없나?

최은경 우먼채널 편집국장

 

 

페미니즘이 문화 막시즘의 일환으로 사회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정신적 피폐함을 유도한다는데 얼마나 심각한가?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나는 페미니즘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그 추구가 과연 나를 지탱하는 사회의 붕괴를 가져온다면, 나는 여성 인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성의 위치가 아직 남성과 동등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이 논제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여성인권운동은 왜 페미니즘이어야 하는가? 과연 페미니즘이 여성의 인권을 정말 옹호하고 있는 것일까? 만일 사회의 조화와 균형을 깨는 인류적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인권운동이 있다면?

 

문화 마르크시즘과 페미니즘 감성팔이, 자유민주주의 위협

가슴 뭉클한 인간애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 각인법을 이용한 문화 막시즘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해 왔다. 평화·반전운동과 같은 문화 감성팔이 확산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나 반격을 침략주의혹은 전쟁광으로 낙인 찍어 대중의 호응을 얻었고, 대중의 뜻을 중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스스로의 방어 능력을 잃게 된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물러가야 했던 이유 중, 평화·반전운동의 일환으로 무수히 뿌려진 심금을 울리는 사진이나 그림들과 인기 연예인들의 호소를 통해, 미소 냉전 중 동남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했던 전쟁에 비난의 화살을 꽂은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미군이 물러간 베트남 상황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양민학살과 보트피플 등 무수한 학살이 이뤄지고, 차례차례 공산화 되어 갔다.

한국의 경우, 제주해군기지 설립 문제로 반대세력이 문화 막시즘을 이용하면서, ‘구럼비를 살려주세요라는 슬로건으로 인간애를 자극했고, 중국 어선이 남해를 드나드는 상태에서 국제 정세와 안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해군기지 설치를 반대했다. 그리고 현재 제주도가 중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제주도는 중국의 막대한 영향력 아래 있다.

1960년대 일어나 불과 50년 밖에 안 되는 페미니즘이 급성장하는 이유는 이러한 문화 막시즘의 일환으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정당성)를 통해 페미니즘과 젠더 감수성을 창궐하게 만들면서, 절대 성역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을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이분화 시켰고, 약자(여성)가 강자(남성)를 비판하면 正義이지만 강자가 약자를 비판하면 嫌惡로 낙인 찍어 비난한다. 이 주장은 조화를 위한 타협의 범위를 지나쳐, 여성이 불쾌감을 느끼거나 혹은 불쾌감을 느낄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이미 여성혐오발언이나 행위로 치부하여, 남녀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심지어 예쁘다는 라는 말도 성희롱이라고 치부하며,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것은 이미 성희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반대 의견을 지닌 사람들을 향해, “차별주의자라 낙인 찍고 여혐(여성 혐오)’으로 몰아가면서,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을 젠더 약자로 절대 성역화시키고 있다.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폐쇄적 오류를 범하며 사회를 균열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패망으로 숨어든 막시스트, 복수와 재기의 칼날로 이용

마르크스와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은 독재로 변질되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취지가 실패로 끝나자, 마르크스의 후예들이 마르크시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선을 시도하며 오류를 분석했다. 그들은 실패 원인이 노동자들이 계급투쟁보다 국가를 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계급의 이익을 보지 못하게 하는 서구문명의 파괴를 주장했다.

문명의 파괴를 꾀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관습과 의식을 파괴하며 인간의 정신부터 피폐하게 만들어야 했고, 1919년 헝가리 공산정부의 문화부 부정치위원이었던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통적인 성적 가치관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최근 국내 학생인권조례에서의 성적 방종을 유도하는 조항들이나 젠더 감수성 및 동성애·페미 교육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감성 헤게모니 선점을 주장하며 문화, 교육, 지식계로 침투하자는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를 비롯해, ‘세대를 거친 긴 행군을 취한다는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존재하는 모든 이론을 비판하라는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와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마르크시즘과 프로이드(Freud) 이론을 규합, 기존의 전통적 가치관을 뒤흔들어 부정적 사고체계를 구축하고 좌익의 주장을 확산하기 위해 우익의 주장을 억압한다는 취지를 펼쳤다.

그들은 서구사회가 인식의 차별이 법제도의 차별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급진페미니스트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면서 兩性체계를 부정했다. 이로 인해 수 십개 의 사회적 성개념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동성애까지 옹호되면서 전통적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 사회는 혼란으로 인해 취약성을 드러낸다.

조현병을 앓고 있던 한 청년의 강남 묻지마 살인 사건이후, 페미니스트들이 그 사건을 한국 여성 혐오의 증거로 삼아 페미니즘 창궐을 시도했고, 여러 단체와 SNS를 통해 활동하고 있으며, 폐해 또한 심각하다는 평이다.

유명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의 여성은 축복받은 존재다. 모든 예술가들에 영감을 준다는 말을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이 공격했고, 결국 종현은 많이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선택해야 했다. 홍대 몰카 사건의 경우, 남자모델의 누드를 유포시킨 여성모델을 두둔하며 피해자가 남성이면 누드사진 유포도 정당화 시키는 모순을 범하고 있으며, 성재기라는 안티페미니스트가 한강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이후, ‘재기시켜라라는 말을 누군가를 마녀사냥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페미 의무교육을 주장하고 대학가에서 메갈리아 교육을 시도하고 있으며, EBS에까지 출연하는 페미니스트들은 급기야 음란 성도구 판매자를 패널로 등장시키고 대학가 강연도 허락하는 곳도 있다. 문화 막시즘의 가정파괴, 사유재산파괴, 종교파괴, 국가파괴와, 젠더 페미니즘의 성별갈등, 가정파괴, 성별해체와 맞물려, 이것을 반대하면 수구, 비도덕, 부패, 즉 성차별, 가부장재도로 낙인찍는 여론전을 통해 의식을 잠식해 가고 있으며, 어김없이 젠더 성역화를 적용시키고 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커서, 이들이 가짜 인권운동이라 비난하고 대학생들의 반발로 음란 성도구 판매업자의 강연이 취소되는 등 향후 전개가 어찌 될지 기다려지지만, 문화 마르크스시즘의 일환인 페미니즘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약화 시키는 만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페미니즘, 과연 진정한 여성을 위한 인권운동인가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들이 정말 여성 인권을 위한 운동가들일까? 이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젠더 불평등에 집중하고 있다. 을 사회가 만든 환상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은 비혼·비출산 및 낙태 결정권을 주장하며 수 십 개의 성을 주장한다. 진정 여성을 위한 것이라면 여성이 지닌 특유의 장점을 더 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한 관건일 것이다. 출산은 여성만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기에 진정한 여권신장운동인지 의구심이 들고, 안정적인 육아를 위한 장치이기도 한 결혼제도를 부정하는 것 역시 정말 여성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간다.

저출산으로 국가 존속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현 시점에서, 비혼·비출산 및 낙태 결정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저출산을 더 심화시키고 국가 해체를 꾀하고 있는 것 아닌가. 또한 위계질서나 기업과 정부를 비롯한 모든 형태가 탈중앙화되고 극단적 민주주의 체제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는 그것이 주는 혼란(chaos)에서 여성이 받을 피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이 탈중앙화되면 책임선도 불분명해지고 안보와 치안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 소위 그들이 말하는 약자인, 여성은 위험에 크게 노출된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하는 중요한 것은 여성의 선천적인 여성성은 자신의 일부라는 것이다. 여성성을 파괴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파괴하는 것이고, 이런 시간이 지속될수록 자아전체의 파괴를 초래한다. 미국은 페미니스트들이 극단으로 지속되다가 술과 마약에 빠져 사회적 문제가 되어 그들의 재활을 위해 미국 정부나 기관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게다가 페미니스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여성가족부는 저출산 해결을 위해 10년간 약 150조의 예산을 가져갔다고 한다. 이들이 과연 그 많은 자금을 사용해서 저출산 해결을 위해 얼마나 효과를 봤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류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 2.2%의 반도 못미치는 1.05%에 머물고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출산율이 0.84%로 나왔다. 현재 인구수에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것은 착시 현상에 의한 것이며 고령화 사회로 노인 사망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시대 고령자들이 사망하고 나면 대한민국 인구는 급속도로 감소할 것이며 5~10 후에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면 과연 페미니즘이 진정 여성을 위하고 여성의 안정과 평화로운 삶을 위해 노력했나? 여러 가지 범죄의 온상이라는 페미 단체 워마드나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인천 여아 살인의 주범과 같은 끔찍한 사건도 있지만, 홍대 몰카 사건이나 강남 한복판에서 반신나체 시위를 벌이는 등, 페미 시위대가 지나가는 행인 폭행 사건만 보더라도 여성의 안정과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여성 인권이 폭행과 범죄 양산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또한, 대한민국의 여성 인권에 비해 열악한 북한 여성 인권에 대해 한마디 말을 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들이 국민 체감 온도와는 달리 대한민국 여성 인권이 최악이라고 모순적 발언을 지속하고 있다. 과연 진정한 여성인권단체라면 북한 여성이나 아프리카 여성 할례, 무슬림 여성들의 극한의 비인권적 관습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 있을까?

 

여성인권운동을 원하는 사람, 어디로 가야 하나

앞서 언급된 것들을 종합해서 볼 때 페미니스트는 진정한 의미의 여성단체도 아니고 내가 선 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균열의 단체로 생각된다. 페미니즘이 공산화를 꾀하는 문화 마르크시즘의 일환이고 내가 사는 사회의 균열을 꾀하는 것이며, 진정한 여성의 인권을 추구하기 보다는 사회적 혼란 초래로 치안에 심각한 위협을 준다면, 또한 개입했을 경우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파괴가 이뤄지거나 퇴폐적으로 빠져 버린다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하겠는가.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여성인권단체는 페미니스트들이 독점하고 있어서, 정말로 여성인권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페미니즘과 인연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여성 인권 신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실제로 데이트 폭력이나 각종 폭력도 존재하지만, 국회의원 여성수를 비롯해서 여성 가사 노동의 무보수 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여성은 스스로 인권을 높이고자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사회 균열을 일으키는 반인류적이고 자아파괴적인 페미니즘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여성단체가 있다면,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없고, 진정한 여권신장운동을 이루어 여성들의 삶이 보다 나아질 뿐 아니라, ‘여성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갈등과 파괴로 치닫게 하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항할 수 있다. ‘여성의 힘과 지혜로 평등한 협동을 이끌어 한 가정을 지키듯,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며 여권을 신장하는 여성단체가 필요하다. 미래한국, 승인 2018.06.25. 13:15

출처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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