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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생하는 관용의 땅, 터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생하는 관용의 땅, 터키

정주헌(前 駐탄자니아, 슬로바키아 대사)

 

 

터키는 이슬람 종교를 믿는 무슬림의 나라이다. 그러나 공화국 수립과 헌법 제정(1924)을 통해 <세속주의>를 국시로 내세워 政敎분리의 원칙과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까지도 터키는 세속주의와 정교분리를 고수하려는 군부 및 사법부와 이슬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려고 시도하는 특정 정당 간에 긴장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터키는 정부차원의 여러 방법으로 이슬람을 이끌 지도자 양성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또한 비이슬람 종교에 대한 신앙의 자유도 허용하나 선교활동은 제한하는 등 중용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

터키에서 종교적인 관용이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인은 소수민족과 이들의 傳來종교 인정, 신교의 자유보장, 공공장소에서의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 금지, 종교재판소 폐지(1924),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 도입(1928), 일부다처제 금지(1930), 국제법 우위권 보장(2004년 헌법) 등 다른 이슬람 국가로서는 엄두도 못 내는 법적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 이민족과 이교도들에 대한 오스만 터키제국(1299-1922)의 포용 관행은 터키가 오늘날 <관용의 땅>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게 된 계기였다.

그리스정교의 본산인 성소피아 성당이 현재 이스탄불에서 이슬람사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로마 점령군이 예수를 처형한 이후 피신해 온 소수의 제자와 신자들에 의해 터키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기독교가 종교로 살아남게 되었다. 이 점에서 터키는 <관용의 땅> 임을 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이스탄불 시내의 유태인 거주지역은 16세기 스페인의 이교도 박해와 추방으로 팔레스타인이나 아랍 지역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는 500만 명에 달하는 유태인을 이스탄불에 받아들여 생긴 것이다.

또한 이때 형성된 터키와 유태인 집단 간의 유대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터키가 종종 이슬람 형제국인 중동의 아랍권 국가들과의 관계 긴장을 감수하면서까지 지탱되어 왔다. 또 이것이 유태교 국가 이스라엘과 전략적으로 협력하고 공조하도록 해주는 바탕이 되고 있다. 오스만 터키제국이 유태인 집단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신앙을 용인했다는 것은 이슬람 세계에서는 실로 유례없는 종교적 관용의 표본이 되어 있다.

터키인들과 사귀면 빠짐없이 듣게 되는 이야기가 터키군대의 한국전쟁 참전에 관한 것이다. 터키인들이 한국전쟁에서 희생해 준 덕분에 대한민국이 국난을 극복했다 하여 이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종종 이슬람 신앙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이 한국인들과는 형제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의 동남부에서 발흥한 돌궐족이 일부는 북동쪽으로 몽골과 만주를 거쳐 한반도와 일본에 정착하였다. 또 다른 일부는 서남쪽으로 서서히 이동하여 옛날의 소아시아이었던 아나톨리아 반도(현재의 터키)11세기부터 정착하고 서부 아나톨리아의 이스탄불 부근의 셀주크 지역에 터전을 잡게 되었으므로 한국을 형제 국가로 여긴다는 것이다. 돌궐이라는 한자어는 중국어로 튀르치로 읽으니 곧 터키가 된다. 이들은 중앙아시아를 떠날 때는 불교와 토착 신앙을 신봉하였지만 아나톨리아 반도에 도착하고 정착하는 긴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현지의 종교와 관습에 따르고 적응하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터키는 유럽연합(EU)에 가입요건을 충족시키려고 헌법을 국제법에 대한 우위권을 보장하는 등으로 개정했지만 정작 EU는 여러 가지 조건을 내세워 종교적인 관용의 나라 터키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임을 망설이고 있다. 이것이 터키가 <관용의 땅>의 주인답지 않게 EU를 향해 '기독교 구락부'(A Christian Club)라고 쏘아붙이는 이유이다. (이 글은 2010년 721일 종교사회단체협의회 창립을 위한 제2차 지도자 간담회에서 발표된 내용의 축약이며 전문은 명사의 컬럼 게시판에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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