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 별세...“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 별세...“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 별세...“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 10일 오후 11시 4분 별세...향년 100세 6·25 전투서 조국 구한 시대의 영웅 전설로 회자되는 다부동 전투...유일한 돌격 장군 백선엽 장군의 1사단, 평양 첫 입성 32세에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 미국에서 전쟁영웅으로 추앙받아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10일 오후 11시 4분 별세했다. 향년 100세. 고인(故人)은 북한 김일성의 기습남침으로 초래된 6·25 전쟁에서 숱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공산주의의 야욕을 꺾은 구국(救國)의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백 장군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11월 23일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2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인엽이 태어난 2년여 뒤 부친이 별세하자 모친은 삼남매를 데리고 평양으로 옮겨 힘든 생계를 이어갔다. 이후 백 장군은 1939년 평양사범학교를 마쳤고 이듬해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갔다. 만주국 장교로 복무했던 백 장군은 해방 직후인 1945년 평양에 돌아갔고, 독립운동가 조만신 선생의 비서로 일하다 김일성이 권력을 쥐자 그해 12월 월남했다. 그리고 1946년 미군정이 조직한 국방경비대 중위로 임관해 부산 제5연대 중대장을 맡았다. 6·25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대령으로 제1사단장이 되어 개성 지역을 담당, 전쟁이 발발하자 군단장과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하며 정전협정체결 때까지 1128일간 최전선에서 격전을 치르며 기념비적인 전과를 올렸다.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낙동강 전선 다부동 전투는 그야말로 전설로 회자된다. 백 장군은 낙동강 전선 고지에서 후퇴하는 부하들에게 “내가 앞장설 테니,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고 외친 뒤 권총을 빼들어 인민군이 점령한 고지로 대차게 뛰어올랐다. 사기가 진작된 부하들도 그 뒤를 따랐으며 결국 고지를 점령했다. 국군 역사상 직접 돌격한 장군은 고인이 유일하다. 이 전투에서 패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는 지금도 고인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이 전투를 회고한 고인의 기록은 미국의 주요 군사학교가 수업 교재로 활용할 정도로 그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이 전투에서 기세를 이어받은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백 장군의 1사단은 그해 10월 18일 평양에 처음 입성하면서 진군의 선봉에 섰다. 1951년에는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막아내 동부 전선의 붕괴를 막았다. 이러한 전공을 인정받아 백 장군은 만 32세이던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이듬해 1월에는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됐다. 1953년 7월 27일 백 장군은 정전 회담 때 한국대표단으로 참석했고 같은 해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도 기여했다. 1957년 5월 육군참모총장으로 복귀한 백 장군은 1959년 연합참모본부 의장을 맡은 뒤 무기체계 현대화에 주력했다. 그리고 1960년 예비역으로 편입했다. 전공으로 태극무공훈장만 두 차례 받았다. 이외에도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백 장군의 기억 속에서 국군 장병과 함께 평양에 첫 입성한 1950년 10월 19일은 “공산당을 물리치고 곧 통일될 것 같던 순간”으로 회고된다. 백 장군의 일화 중에는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의 방한 당시 한국군 증강 필요성을 브리핑하면서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한 것도 있다. 또한 백 장군은 1948년 10월 정부 수립 직후 군 내부 남로당의 조직책으로 체포돼 사형 선고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17~79년, 재임 62~79년, 당시 소령)에 대한 구명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백 장군은 미국에서 특히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들은 ‘한국전쟁의 영웅이신 백선엽 장군님’이라고 부르며 이·취임사를 시작하는 게 전통이다. 미군 장성 진급자와 미 국방부 직원들도 방한하면 백 장군을 만난다. 주한 미8군은 미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카투사·KATUSA) 우수 병사에게 ‘백선엽상’을 준다. 2013년 8월 미 8군은 백 장군을 ‘미8군 명예사령관’에 임명했다. 당시 미 8군은 “6·25전쟁 당시 한반도를 방어하는 데 탁월한 업적을 달성했고 한국의 미래를 결정해 온 역사적 순간의 증인”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미 국립보병박물관은 백 장군의 6·25 경험담을 육성으로 담아 전시하고 있다. 백 장군이 1992년 펴낸 영문판 ‘From Busan to Panmunjeom(부산에서 판문점까지)’ 등은 미국 내 전쟁역사(戰史)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집계된다. 예편 후 백 장군은 주중(당시 대만) 대사로 부임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프랑스·캐나다 대사 등을 지낸 뒤 1969년 교통부장관에 임명됐다. 정치 활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한국전쟁一千日’(1988), ‘軍과 나’(1989), ‘실록 지리산’(1992), ‘한국전쟁Ⅰ,Ⅱ,Ⅲ’(2000), 회고록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2010),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2012)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노인숙씨, 아들 백남혁·백남흥씨, 딸 백남희·백남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02-3010-2000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펜앤드마이크, 최종수정 2020.07.11. 11:33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33498










조계종단 ‘큰 어른’ 12명 대종사 법계 품서 엄수 종단 ‘큰 어른’ 12명 대종사 법계 품서 엄수 조계종, 팔공총림 동화사서 대종사 법계 품서식 봉행 수행력과 덕망을 겸비한 조계종 ‘큰 어른’ 12명 대종사 스님들이 탄생했다. 조계종(총무원장 원행스님)은 1월8일 팔공총림 동화사 통일기원대전에서 대종사 법계 품서식을 봉행했다. 이날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로부터 대종사 법계를 품서받은 스님은 모두 12명. 법인스님, 자광스님, 동광스님, 청우스님, 천진스님, 혜거스님, 정우스님, 정광스님, 보광스님, 종성스님, 선용스님, 문인스님 등이다.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는 12명 스님들에게 대종사 법계증과 이를 상징하는 휘장이 부착된 25조 가사를 내렸다. 진제 종정예하는 법어를 통해 “금일 대종사 법계품서에 임하시는 용상고덕 스님들께 사부대중과 더불어 찬탄하고 만심환희한다”며 “대종사님들은 일평생 올곧은 수행과 덕성으로 불덕과 지혜를 두루 갖추니 이는 수행력과 지도력의 상징으로 존경과 흠모가 따르니 만고의 방양”이라고 치하했다. 이어 대종사 스님들에게 “인천의 사표인 대종사의 출현은 종도들이 삼보에 대한 신심과 원력을 키우고 여법하게 수행해 일상생활에서 체현되어 세상을 맑게 밝히는 연등이 될 것”이라며 “금일 대종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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